덕혜옹주
권비영 장편소설
다산책방
요즘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자주 간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렇게나 책을 좋아하는 나인데 그동안 왜 잊고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 키우는 데 그저 열심이었을까. 그동안 정말 나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나 대신 우리아이들의 엄마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조금 크고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나를 돌아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내가 좋아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간 날때마다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읽을 만한 분야를 정해서 읽기보다는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읽는 식으로 내 안에 감춰진 욕구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온 책은 덕혜옹주였다. 왜 눈에 띄였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단숨에 읽고 싶었고 한 시간을 숨죽인채 덕혜옹주만을 바라는 시간을 가졌다.
부끄럽지만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였던 사실도 그리고 영화의 소재였다는 사실도, 그 영화의 주인공이 손예진이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다 읽고 검색하던 중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정말 육아에만 집중했던 터일까. 내 삶에 여유는 없었던 까닭일까. 아마 책을 읽어도 육아서적이나 동화를 읽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스스로 위안삼아본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막내딸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다. 알려진 것이 많이 없었던 불우한 여인 덕혜옹주는 권비영 작가에 의해 다시 태어나 자신의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 같다.
일제강점기
고종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고 순종에게 이미 왕의 자리를 물려준 신세였다. 어떠한 것도 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었지만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준 것 어여쁜 자신의 딸이었다. 사랑하는 딸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던 고종은 사랑하는 딸의 부마를 결정해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던 그 찰나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옹주는 그렇게 슬픈 삶의 자락에서 버티고 버티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의 죄는 세 가지 였다.
지나치게 영민한 것, 품어서는 안 될 그리움을 품은 것, 조선 마지막 황제의 딸로 태어난 것...
고종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었지만, 일본의 볼모로 잡혀가 감내해야 했던 37년간의 비참한 삶. 원수나 다름없는 남자와의 강제 결혼. 15년간의 정신병동 감금. 하나뿐인 딸의 자살.
그리고 조국의 외면...
조선 최후의 황족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 누구인가.
알려진 것이 많이 없는 까닭에 작가의 상상력이 깃들여진 이야기라 해도 그대로 믿고 싶을 정도로 가슴에 와닿았다. 강인했기에 더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의 삶이 참 가엾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끝까지 덕혜옹주를 위해 헌신하는 복순이의 삶 또한 참 가슴이 아렸다.
영화로 만들어진 덕혜옹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봐야겠다.
덕혜옹주(1912~1989)
조선의 제 26대 왕인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아버지 고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부터 공포에 휩싸여 살았으며 신식 여성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간 뒤에는 우울증에 고독감까지 겹쳐 실어증에 걸렸다.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 안주하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